'영크크, 멘헤라, 짜치다, 밤티'를 아세요? 요즘 며느리 또는 사위에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너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 가문이 어떤 가문인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세상이 달라졌다. 결혼도 그렇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결혼했다는 조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는 이미 역사의 뒤로 사라진 듯하고, 부모님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리상, 가사노동의 '가'자를 몰라도 능력이 출중한 사위감이 인기있던 시대, 결혼은 필수라는 표어도 역사책 속에 들어간 듯하다.
이제는 말이 통하는 사람, 다정한 사람, 예쁜 사람, 잘 생긴 사람, 성적으로 맞는 사람 등등이 배우자로 인기있는 사람이 된 듯하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더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고, 그 선택에 있어 개개인의 자유로운 결정권은 포기할 수 없고, 포기되어서도 안 되는 권리로 자리 잡았다. 자녀 결혼에 반대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부모 세대도 그 권리행사로 '자녀'나 '손자녀'를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그 권리를 잘 행사하지 못한다.
그런데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는 것은 어떤가? 아내 또는 남편은 결혼생활이 불행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데, 혼자로 돌아가야 숨을 쉴 수 있다는데, 상대방이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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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추구권, 내 인생에 대한 결정권은 법원을 통해야 행사할 수 있다.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다'라고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혼인생활을 해 온 부부가 있다. 남편은 말한다. "내가 돈을 안 벌어다줬냐, 바람을 피길 했냐, 때리기를 했냐,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그러나 아내는 숨을 쉴 수 없다. 카드 사용 내역을 일일이 확인하고 잔소리를 하는 남편에게 외출 일정을 일일이 보고해야 하고, 친구들과의 여행에도 남편과 함께해야 하고, 남편이 원할 때 친정에 손을 벌려야 되는 고통을 남편은 모른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남편은 아내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남편은 간섭과 통제를 사랑과 관심이라고 우긴다. 살고 싶어서 용기를 낸 아내의 이혼 청구에 남편은 여전히 반대한다. 30년 동안 울며 매달려도 달라지지 않던 남편이 법원에서는 달라지겠다고 한다. 아내는 믿을 수 없다. 이 혼인관계는 계속되어야 할까?
경수씨는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 주는데도 생활비가 적다고 불만이고, 어린 자녀들에게 과도한 사교육을 시키고, 말을 하려고 하면 '니가 뭘 알아'라고 하면서 남편을 무시하는 아내 옆에서 외롭고 힘들었다. 경수씨의 건강을 챙겨주고, 밥을 차려주는 여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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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씨는 이혼 소송을 하였으나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이혼청구가 기각되었다. 이혼소송에서 혼인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한 아내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졌다. 주위사람들에게 경수씨를 '외도남'으로 낙인을 찍어 수군대는 소리를 참아야 했다. '니가 잘못했으니 당연히 받을 벌'이라면서 아내는 전보다 더 잘 해야 한다고 경수씨를 다그쳤다. 집을 나왔다. 아내는 왜 나갔는지 묻지 않는다. 생활비나 잘 보내라고 한다. 이 혼인관계는 계속되어야?할까?
혼인은 상대방을 소유하거나 지배할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가 아니다. 서로가 공유하게 되는 수입, 시간, 수고 등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고마운 것이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혼인과 가족생활도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서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주고, 고마움을 가지고 사랑하는 언어, 몸짓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일방이 원한다는 이유로 이혼이 언제나 허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긴 하다. 그러나 혼인을 유지하려는 의사가 상대방의 인격적 자유와 존엄을 지속적으로 희생시키는 결과가 되어서도 안 된다. 100세 시대다. 더욱이 세상이 달라졌다. 결혼뿐 아니라 헤어짐에 대해서도 달라진 세태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최호식 대표변호사(법무법인 우승)·전 서울가정법원장
나 지배할 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