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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은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바꿨다.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의 후손들이 동포를 향해 총을 겨눈 전두환 일당과 맞섰다. 그러나 몽둥이와 재래식 무기로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계엄군의 절벽을 넘을 수 없었다.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죽음 속에서 교훈을 얻었고 희망가를 합창했다. 구두닦이와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들이 참여한 5·18민주화운동에서, 호남의 민초들은 역사의 부름 앞에 시민군으로 변모해 절규했다.
“계엄령을 해제해라.” “공수부대 물러가라.” “전두환을 박살 내 중고자동차 할부 조건 자.” “노동3권 보장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이발소 노동자서 5월 운동가로 변신
지난 9일 소천해 11일에 안장식을 마친 전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 김후식 선생. 고인은 1941년 12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62년에 최점덕님과 결혼해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고인은 이발 노동자로 1 수협 햇살론 980년 5월을 맞았다. 무고한 시민들이 계엄군에 쓰러지자 일손을 멈추고 거리로 나섰다. 5월21일 오후 1시 무렵 계엄군의 발포로 옛 광주관광호텔 앞에서 관통상을 입고 쓰러진 뒤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운명의 1980년 5월27일 새벽 어느 여학생의 처절한 호소가 양심을 할퀴었다.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 만남사이트 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서 도청으로 모여주십시오.”
병원까지 총을 난사하며 옛 전남도청으로 진격하는 계엄군이 무서웠다. 시민군 곁으로 가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 그래서 도청으로 갈 수 없었고 비겁자로 전락했다. 홑이불을 뒤집어쓰고 호곡한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국심이었다. 대학생대출무직자대출 안타깝게도 죽음으로 바치고자 한 희망찬 새벽은 눈만 떴을 뿐 끝내 민주주의의 아침을 밝히진 못했다.
며칠 후부터 악명 높은 합동수사단의 ‘폭도 색출 작전’에 시달려야 했다. 혐의가 많다고 인정된 에이(A)급 폭도들은 어디론가 끌려갔다. 고인은 중환자여서 용서받았지만 병원에서 편히 치료받을 수 없었다.
주소제공
2019년 2월 김후식(가운데) 당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이 서울 국회 앞에서 5·18 왜곡·폄훼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필자 제공
전두환 일당은 환자들끼리 단결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분산시키려 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퇴근도 하지 못한 채 환자들을 돌봐줬지만 병원 역시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강제 퇴원 작전’의 음모를 간파한 필자는 화가 났다. 그래서 환자복을 입은 채 당시 전남도 보건과로 쳐들어가 항의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6·25 한국전쟁 당시의 ‘소개 작전’처럼, 쿠데타 세력의 의도대로 중환자를 제외하곤 ‘강제 퇴원’의 만행을 겪어야 했다. 고인과 필자 등이 살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가게 된 이유다.
“5월 단체들의 맏형 역할 즐거워했죠”
고인을 처음 만난 것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를 창립한 1982년 10월 무렵으로 기억한다. 그때 고인은 서울에서 치료받고 광주로 내려오셨다. 40대 초반이었지만 정의감이 투철했고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처음에는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라져 회장 선거에서 대결하기도 했다. 5월 관련 단체가 난립한다는 비판을 받고 단체들의 통합을 이룬 후 부상자회 회장, 옛 전남도청 복원 범시민대책위원회 상임 공동의장,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 상임 행사위원장으로서 5월 운동에 헌신했다. 또한 김근태 전 장관과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도 소통했다.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운영위원, 광주 평화연대 고문을 역임하며 통일운동에 기여하는 등 광폭 행보를 했다.
2019년 2월 김후식(왼쪽 다섯째) 당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 등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국회 토론회에서 5·18 왜곡·폄훼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규탄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필자 제공
고인이 남긴 족적은 많다. 대표적인 것을 뽑자면 올해 23회를 맞이한 ‘5월정신 계승을 위한 전국 휘호대회’다. 수많은 휘호대회가 있지만 대통령상이 있는 건 이 대회가 유일하다. 5월 영령들이 잠든 5·18국립묘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붓글씨를 쓰며, 유네스코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5월 정신을 실천한다고 상상해보자. 그것만으로도 교훈과 감동이 되고 예술적 가치가 있지 않을까.
여담 하나를 풀어놓는다. 고인 존함이 ‘후식’이라 가끔 농담한 적이 있었다.
“성님, 정식을 먹어서 배부르니까 후식은 먹지 말고 이만 헤어집시다.”
“예끼, 뭔 소리여. 내가 후식값은 내부렀응께 차분히 맛나게 들어잉.”
43년 동안 수없이 놀렸다. 그렇지만 언제나 살가운 가슴으로 받아주신 김후식 회장님. 이제 다시는 그 포근한 미소를 만날 수 없어서 어쩌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어서 오해받은 적도 있었다. 소년 같은 열정도 혈액암과 폐암은 극복하지 못한 채 84살에 5월 영령들 곁으로 떠나버렸다. 5월 시민·사회단체의 맏형 역할을 즐거워한 김회장님. 아직도 5월 정상화와 입법 투쟁 등 난제가 산적해 있는데 지도자 한분을 떠나보냈다. 지켜주지 못한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오직 애통하고 죄송하다.
“후식이 성님. 이제 후식은 절대 안 먹을라요. 왜냐고라? 7500만 동포랑 ‘통일식’을 준비할라요. 그랑께 김구 선생님, 김근태 선배님과 민주·통일열사님들 모시고 꼭 오십시오.”
지난 11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김후식 전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의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 필자 제공
이지현/시인·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상임부회장